"#nofilter" — 2012~2015년 인스타그램에서 가장 많이 쓰인 해시태그 중 하나입니다. 역설적이게도 #nofilter를 달면서 Valencia 필터를 쓰는 것이 당시의 트렌드였습니다. 이 모순이 인스타그램 초기 감성의 핵심입니다.
인스타그램은 2010년 10월 출시됐지만,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2012~2013년 무렵입니다. 초기 인스타그램의 가장 큰 특징은 정사각형(1:1) 사진 형식이었습니다. 스마트폰 카메라의 기본 비율과 달랐기 때문에, 사진을 업로드하기 전 어떻게 크롭할지 고민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창작 과정이었습니다.
당시 인스타그램에서 제공한 필터들은 그 자체가 하나의 미학이었습니다. Valencia(따뜻한 오렌지 세피아 톤), Earlybird(노란빛 빈티지), Toaster(강한 비네팅과 오렌지 하이라이트), X-Pro II(강렬한 대비와 파란 섀도우)가 인기였습니다. 이 필터들은 필름 카메라, 로모그래피, 폴라로이드 카메라의 색감을 디지털로 재현한 것이었습니다.
로모그래피 카메라의 영향도 컸습니다. 로모그래피는 러시아 로모 카메라로 찍은 사진 특유의 비네팅(가장자리 어둡게), 색수차(색상 번짐), 강한 채도가 특징인 사진 예술 운동입니다. 이 감성이 인스타그램 초기 필터 문화와 맞닿으면서 '인스타 감성'의 기초가 됐습니다.
음식 사진 문화도 이 시기에 본격화됐습니다. 식당에 가기 전 "사진 찍어도 되나요?" 를 묻는 것이 자연스러워졌고, 창가 자리가 '사진 맛집'으로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Valencia 필터를 적용하면 커피 한 잔도 예술 작품처럼 보였습니다.
2015~2016년을 기점으로 인스타그램 초기의 빈티지 필터 문화는 서서히 VSCO의 필름 프리셋 문화로 대체됩니다. 인스타그램 자체도 정사각형 제한을 풀고, 알고리즘 피드로 전환하면서 변화했습니다. 하지만 그 시절 #nofilter를 달며 필터를 썼던 역설적 감성은 지금도 레트로 사진 문화로 이어지고 있습니다.